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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들> 경산 코발트 광산, 괴담 속에 묻힌 70년의 진실

by I'm 치코 2020. 7. 22.





흉가에는 영적인 존재가 많다고 하여 공포체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끊임 없이 찾아가는 성지 같은 곳입니다.


특히나 곧 시작될 무더운 한여름이 되면 스릴을 찾겠다며 더욱 위험을 감수하고 찾아다니곤 하는데요.


그리고 경상북도 경산시에는 사람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는 대표적인 장소가 있습니다.


그 곳은 바로 경산 코발트 광산입니다.


용하다는 무당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려할 정도로 영적인 기운이 강하다는 이 곳 경산 코발트 광산.


하지만 아직도 이 곳에는 많은 사람이 공포체험을 위해 방문을 한다고 합니다.


과연 이곳은 어떤 곳이고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요?


경산 코발트 광산을 둘러싼 수많은 괴담은 수십 년 전부터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공포 체험을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꼭 가봐야 하는 대표적 장소가 되었는데요.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과거 광산 옆에 섬유공장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계속해서 발생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공장 사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후 들어선 안경공장이나 구두공장 역시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 사고의 원인은 모두 코발트 광산 때문이라는게 바로 떠도는 이야기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단순히 귀신을 본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도 사람의 뼈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요?


1941년,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인 코발트 매장량이 풍부했던 이곳 광산은 식민지에 의해 개척되어 운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4년 후, 대한민국이 독립을 하고 자연스럽게 폐광되면서 그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버렸죠.


그리고 1949년 우리나라에는 국민보도연맹이란 단체가 탄생했습니다.


남로당, 공산당에 있었던 사람들을 교화시켜서 자유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만든다는 취지로 생겨났다는 국민보도연맹.


그러나 이 단체에 소속된 사람 중에는 취지를 알고 가입한 사람도 있었지만, 민간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고 합니다.


할당제가 있었던 탓에 단체의 인원수를 어떻게든 채워야만 했고 이에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당시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며 가입을 요구했습니다.


이후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국가는 전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어있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살지로는 바로 이 폐광산이 이용됐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끌고 와서 밧줄로 이어 묶고 일부 인원에게만 총을 겨눠 밧줄로 연결된 사람들을 광산 수직 갱도에 떨어트린 사건.


더 충격적인 것은 학살 대상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경산에서만 약 3천 5백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사건 이후 50년이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야 전국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이 진행되었습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 역시 유족들에 의해 조금씩 유해를 수습하다가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국가 차원의 발굴이 2007년부터 약 3년 동안 진행되었는데요.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10년 해산하게 됐고 더 이상의 발굴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수많은 유해가 묻혀있는 광산 주변에는 요양 병원과 골프장이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560여 구.


당시 희생자에 비하면 턱 없이 적은 숫자만을 발굴했음에도 경산 코발트 광산의 유해 발굴 작업은 그대로 멈춰있습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경산 코발트 광산의 아픈 진실.


억울하게 죽어간 대다수의 사람들의 넋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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